명상은 정신을 집중하고 외부세계에 대해 스스로 관심을 끊으며 자신의 내적세계를 바라보는
행위 입니다.

명상의 시작은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 인도의 전통 종교에서 교리를 실현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 이었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주로 명상이 가져다 주는 여러가지 긍정적인 효과들을 얻기 위한 대체의학의 성격으로 명상을 합니다.

            명상의 효과



명상의 효과는 이미 생리학적으로 증명되어 있습니다.
명상을 하게 될때 나타나는 신체의 변화는 아래와 같습니다.

호르몬 분비의 균형을 찾게 됩니다.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 물질 중 인간을 각성과 흥분상태로 만드는 노르아드레날린이나 도파민의 분비가 줄어들게 되고 감정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 기분 좋은 느낌을 만들어 주는 베타 엔드로핀의 분비가 촉진 됩니다.

그리고 편안하고 안정적인 뇌파가 나타납니다. (뇌파는 뇌신경과 신경계 사이의 전기적 흐름 입니다.
이 전기적 흐름을 관측하는 것이 뇌파검사 이며 뇌파의 측정은 인간의 정신상태를 간략하게 알수 있는 방법 입니다.)
 인간이 각성상태에 있을 때는 주로 베타파 라는 뇌파가 나타나게 됩니다. 베타파는 스트레스파라고도 하며 불안과 긴장상태에 있을 때 나타 납니다. 반면 명상을 하게 되면 알파파 라는 뇌파가 증가 합니다. 알파파는 심신이 안정을 취하고 있을때 나타나는 뇌파 입니다. 알파파를 비롯하여 인간이 얕은 잠을 잘때 나오는 세타파 역시 증가 하게 됩니다.

혈액순환이 개선됩니다. 명상을 하게 되면 신체가 이완되고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 됩니다. 이로인해 혈압을 높이는 체내의 성분들이 억제되고 혈관이 확장되어 혈액순환이 좋아지게 되는 것 입니다. 
또한 신진대사가 느려져 산소를 적게 소모하게 되어 혈액에 산소가 풍부해지기 때문에 산소를 많이 사용 하는 뇌신경이나 뇌혈류량 역시 안정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줄어들고, 인지능력이 향상되며, 학습능률이 올라가고 면역력이 증강되는 등의 효과가 있습니다.

위의 결과는 단지 명상에 빠졌을 때 그리고 명상을 꾸준히 지속했을 때 인간의 신체 변화를 생리학적으로 관측한 것 입니다. 언뜻보면 효과가 너무 좋아서 허무맹랑한 소리 처럼 들리기 까지 합니다.

명상이 이러한 효과를 가지는 이유는 명상이 기본적으로 깊은 휴식을 취하는 행위이기 때문 입니다. 구지 명상에 빠지지 않더라도 가만히 앉아 스트레스를 주는 생각들을 하지 않는 것 만으로도 육체의 휴식은 물론 정신적인 안정까지 얻게 됩니다. 그로인해 심신의 건강상태가 좋아지게 되고 그래서 면역력 증강 이라던가 학습능률이 향상되는 등의 부가적인 효과를 얻게 되는 것 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생리학적인 효과들은 과학적인 해석일뿐 실제 명상 체험자는 이러한 설명을 구지 하지 않아도 그 효과를 몸소 느끼게 됩니다. 

명상은 자기 내면의 세계를 바라 보는 것이라 명상의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주관적인 해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명상 체험자로써의 제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명상을 접하게 되면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여러가지 느낌이나 감정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명상이 느끼게 하는 것들은 훈련을 통해 깨우치지 않으면 일상생활 속에서는 느끼기 힘든 것 들이었기 때문 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실제로 직면한 어려움으로 인해 만들어진 스트레스를 제외한 출처가 불분명한 스트레스나 막연한 두려움 등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 입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이런 구체화할 수 없는 불안증이나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직면한 스트레스라 할지라도 바라보는 관점이 더 긍정적이 되었으며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감정을 조절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주관적인 시선이 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전에는 마치 희뿌연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느낌이었다면 체험 후에는 맑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부분은 아마도 명상을 통해 스스로를 더 많이 이해함으로써 좀 더 자기만의 시선이 생긴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우울감에 쉽게 빠지지 않게 되었고 스트레스 역시 덜 받거나 쉽게 그 상태를 벗어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마음의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아마 다른 명상 체험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 됩니다. 물론 다른 느낌이나 현상들 역시 체험하였지만 명상의 체험은 너무나도 주관적인 것이고 앞서 말한바와 같이 전에는 느껴본적이 없는 감정이기 때문에 언어로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명상체험자들의 경험을 들어봤을 때에도  뭔가 형이상학적인 단어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 안타깝기 까지 하였습니다. 명상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뭐라고 말로 할수도 없고.. 정말 이 카피문구가 떠오르네요.

결론은 명상이 어떤 특정한 질병을 고쳐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되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하는 등의 효과로 인해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되게 됨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명상을 하게 되면 이런 여러 긍정적인 효과들을 즉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명상법



명상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목적은 모두 같습니다 명상에 빠지는 것 이지요. 그래서 자신에게 가장 맞는 명상법을 찾아 행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일단 여기서는 가장 널리 쓰이는 기본적인 명상법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명상을 행하기 앞서 조용하고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는게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이면 더욱 좋으며 조명도 낮추는게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같은 자세로 계속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적당히 푹신한 쿠션을 준비하는게 좋습니다.

명상수련을 계속 하다보면 장소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명상에 빠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초보자들에게는 산만한 환경에서의 명상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 입니다. 그래서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 합니다.

이제 적절한 환경이 조성 되었으면 정자세로 허리를 편체로 앉아 눈을 감습니다. 손은 무릎위에 자연스럽게 올립니다. 앉는 방법이나 손의 위치는 체험자가 편한데로 하면 됩니다. 특정한 자세가 중요한게 아니라 명상에 빠지기 앞서 집중할 수 있는 편한 자세가 요구되는 것 입니다. 그러나 몸을 구부정하게 하거나 너무 기댄 자세는 집중하는것에 방해가 되므로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천천히 호흡 합니다. 호흡법은 셋을 샐동안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일곱을 샐동안에 천천히 숨을 내뱉으면 됩니다. 호흡법이 중요한 이유는 천천히 그리고 깊게 내쉬는 호흡이 체내에 산소량을 늘려 맑은 정신을 갖게 하고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잡념을 제거 시키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 입니다. 

앞서 말씀드린것은 자세에 관한 것이었고 지금 부터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이제 마음속에 모든 잡념들을 제거 합니다. 특히 언어화된 논리적인 사고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 잡념을 제거한다는게 쉽지 않을 것 입니다. 그럴 때는 잡념에 집중하지 않고 마치 자기 자신을 멀리서 관찰하듯 잡념들 역시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것을 바라본 다는 생각으로 흘려 보냅니다. 100중에 99 만큼 잡념에 사로 잡혀있고 단 1만 집중하고 있다해도 99 보다 1을 더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깨어있는 상태에서 계속 마음을 비우고 집중 하세요.

명상은 먼곳 까지 뛰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는 것 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깊은 명상에 빠져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천천히 명상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럼 이제 어느 순간부터 잡념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명상에 빠지기 시작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빠지게 될 명상은 아주 주관적인 체험이 될 것 입니다.

명상에 빠지다 보면 마음이 비워지는 것 외에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이것은 비언어적이며 비논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만 거의 모든 명상체험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 입니다. 점점 이 느낌에 집중하고 따라가다 보면 깊은 명상에 빠질 수 있습니다.

명상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방법은 간단하지만 깊은 명상에 빠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의 명상의 경우 여기서 끝이나게 됩니다. 하지만 얕은 명상만으로도 앞서 설명한 긍정적인 효과들을 바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대체의학의 성격이 강하지만 명상의 시작은 고대 인도인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이 었습니다. 명상의 긍정적인 효과는 이 깨달음을 얻기위한 과정에서 나오는 부수적인 효과들 입니다.

그 깨달음이란 대부분, 깨어잇는 인간이 되는 것, 스스로에 대해 계몽하게 되는 것, 자신의 인격의 일부만이 아니라 전인격을 다룰 수 있는 상태 그래서 진정한 스스로를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 입니다.

이 깨달음은 깊은 명상에 빠질 수록 자연스럽게 내적인 곳에서 부터 알게 된다고 합니다.

            명상의 심리학



심리학의 관점에서 본 명상은 무의식과 관련이 깊습니다.

앞서 말한 알파파와 세타파라는 뇌파가 증가되는 모습은 명상을 할 때, 최면에 빠졌을 때, 잠을자고 있을 때 공통적으로 관측되는 것 입니다. 바로 무의식과 조우 할때 나타나는 특징인 것 입니다.

인간은 깨어있는 동안에는 의식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무의식과 조우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잠을 잘 때에 우리는 무의식과 만날 수 있지만 이것은 완전히 의식을 배제한 것이고 최면에 의해 유도 되는 무의식은 최면 유도자에 의해 수동적으로 행해지는 것 입니다. 하지만 명상으로 인해 조우하는 무의식은 깨어있는 상태에서 직접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특별 합니다.

그리고 분석심리학 에서 알려진 대부분의 정신적인 병은 무의식과 의식이 서로 다른 곳을 지향할 때 나타 납니다. 무의식은 오른쪽으로 가고자 하지만 의식적으로 이를 알아차리지 못해 왼쪽으로 간다면 내적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또한 무의식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정신적인 병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의식 안에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내제되어 있을 때에 의식적으로 이를 행하지 않거나 제대로 억제하지 않으면 이 역시 트라우마로 작용하게 되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분석심리학에서의 치료는 거의 다 심리학자가 환자와 상담하여 환자의 무의식을 해석해 들려주는 것 입니다. 무의식을 이해하는 것 만으로도 치료가 가능 하다는 것 입니다. 명상은 이를 혼자서 수행하게 해줍니다.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카를 융 역시 안정적인 정신 상태를 가지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명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 하였습니다.



또 한가지 심리학적 관점은 바로 페르소나 라는 것에 있습니다.

페르소나란 가면이란 뜻에 라틴어로 분석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비춰지는 외적인 성격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들을 대합니다.  부모님에게 비춰지는 모습, 친구들에게 비춰지는 모습, 직장상사에게 비춰지는 자기 모습 들이 서로 조금씩 다른건 이때문 입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는 아주 얌전하게 굴지만 친구와 만날 때에는 굉장히 활달하게 변한다던가 직장상사 앞에서는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 들이 다 페르소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페르소나라는 것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실제 자기 자신의 모습과 페르소나가 너무 동떨어져 있거나 페르소나가 지나치게 강할 때 입니다.

만약 아주 활달한 성격의 여성이 가정의 가부장적인 분위기 때문에 어렸을 때 부터 지나치게 얌전한 모습을 강요받아 이것이 페르소나로 발전하게 되면 그 여성에게는 심각한 내적갈등이 일어날 것 입니다. 또한 방송인 김나영씨가 가면성 우울증에 걸렸었다는 사실이 이슈가 된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가면 이라는 용어를 찾아 볼 수 있는데요. 이는 페르소나가 너무 강해 자신이 우울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 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페르소나는 인간에게 장애를 일으키는 면이 있지만 문제는 페르소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페르소나는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서 같이 생활하기 위해 만든 모습일 뿐 입니다. 페르소나가 자신의 실제 모습과 비슷하거나 자신을 깊이 이해한 상태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다지 스트레스가 되지 않습니다.

페르소나를 이해하려면 그에 앞서 자기 자신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명상은 이런면에서 많은 도움을 줍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앞에서 말한 페르소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페르소나가 자기의 진짜 모습이라고 착각할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명상은 자기의 내적인면만을 들여다 보는 것 입니다. 모든 시선이 자기 자신만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페르소나의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명상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명상은 스스로가 아니면 아무도 돌봐주지 않으면서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 입니다. 그리고 어떤 부작용도 없으며 모든 효과가 긍정적 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당히 명상을 추천 합니다.

 



최면 - 최면유도자가 최면체험자에게 암시를 걸어 유도자의 의도에 따라 체험자를 행동하게 또는 생각하게 만드는 것 혹은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어 자기 자신의 의식, 무의식의 상태를 바꾸는 것

이것이 최면의 정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면은 굉장히 익숙한 단어 이면서도 뭔가 초자연적인 현상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최면을 거짓이나 짜고하는 쇼라고 하는 사람들 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최면은 과학적인것이며 무엇보다 진실 입니다.

오늘은 최면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최면은 영어로 hypnosis 라고 합니다. hypnosis의 어원은 hypnos로 고대 그리스어 에서 잠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례됐습니다. 실제로 최면은 사람이 잠을 자고 있는 상태와 매우 비슷합니다. 그리고 잠과 함께 최면에 빠졌을 때와 비슷한 상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깊은 명상에 빠져있을 때 입니다.

그럼 최면, 명상, 잠을 자고 있는 상태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공통점은 모두 의식이 희미해져 있는 상태라는 점 입니다. 잠은 말할것도 없이 의식이 없는 상태이고 명상 또한 의식적인 생각과 잡념을 없에는 과정 때문에 무의식에 가까운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최면에 빠진 상태도 이와 비슷하죠. <최면에서는 이런 무의식에 가까운 상태를 '트랜스 상태' 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최면을 거는 것은 의식에 대고 암시를 거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로인해 최면에 빠져나오고 난 다음에도 의식은 인지하지 못하는데 무의식에 걸린 암시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거나 최면에 빠진 사실을 잊어버리기도 하는 것 입니다.

무의식은 어떤 것 이길래 내의지와 상관 없이 날 행동하게 만드는 걸까요? 무의식에 대해 알아보기 앞서 최면은 어떤 방법으로 거는 것 이고 어떻게 걸리게 되는지 부터 알아 보겠습니다.



흔히 최면 하면 많이 떠올리는 장면이 위 사진과 같이 최면유도자가 최면체험자에게 최면을 거는 장면일 겁니다. 이런 방법을 직접최면 유도 기법 이라고 하는데요. 가장 흔하면서도 전통적인 방식의 최면 입니다. 그러면 이 직접최면 유도 기법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먼저 최면을 걸기 전에는 그에 필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 중 하는 최면체험자의 체질 입니다. 최면은 사람에 따라 쉽게 빠지기도 하고 어렵게 빠지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최면에 빠지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 최면감수성 이라고 하는데요. 최면감수성이 높은 사람은 아무래도 최면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최면감수성 외에 다른 조건으로는 유도자와 체험자의 신뢰관계가 있습니다. 최면유도자가 아무리 최면을 걸려고 해도 체험자가 이를 신뢰하지 않거나 최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체험자의 마음가짐 또한 중요 합니다. 최면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거나 주저하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최면에 대해 공격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최면에 빠지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최면체험자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 자세, 분위기를 갖추면 최면을 위한 준비가 끝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위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상황에서 최면에 빠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면을 거는 방법은 한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 몇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시각적인 최면 방법 - 손이나 위의 사진처럼 시계 같은 물건 등을 이용해 최면을 거는 방법 입니다. 시각적인 최면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최면은 언어를 이용한 암시를 통해 이루어 집니다. 그래서 손이나 물건 등에 시선을 집중하게 한 후 언어를 사용해 체험자를 편안하게 하고 눈을 감을 수 있게 유도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최면에 빠져들게 하는 것 입니다.

청각적인 최면 방법 - 청각적인 방법은 위의 시각적인 방법에서 처럼 최면에 필요한 보조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오로지 소리를 통해서만 최면을 거는 방법 입니다. 보통 최면이 그런 것 처럼 말을 통해 최면에 빠지게 하거나 메트로놈, 시계소리 등을 통해서 최면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감각을 이용한 방법 - 신체접촉을 통해 최면을 유도하는 방법 입니다. 이 또한 주로 언어를 통해 최면을 걸고 감각적인 것은 보조적인 용도로 사용 합니다. 감각을 이용해서 최면을 걸 때에는 체험자가 놀라지 않게 신체접촉이 있을 것이라고 미리 말을 해주어야 하며 최면에 빠져들때 몸을 누르거나 접촉 하므로써 최면에 빠져들게 합니다.

그 외에 후각적인 방법이나 움직임을 통한 최면 방법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최면이 언어를 통해 이루어 지기 때문에 최면유도자는 최면을 유도하는 말을 잘 하여야 합니다. 보통 최면을 걸기 전에 사용할 말을 정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가끔 TV 에서 심리학자가 '이제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 집니다. 당신의 몸도 의자 밑으로 점점 가라앉는 것을 느낍니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 이나 김영국 교수님이 사용해서 유명해진 레드썬! 이라는 단어도 최면에 빠져들게 하기 위해 미리 정해둔 특별한 의미는 없는 말 입니다.

최면의 다른 형태로는 최면체험자와 유도자가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체험자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최면을 거는 에릭슨 최면법과 흔히 자신감을 높이거나 어떤 행동을 실행하기 전에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암시를 거는 자기최면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방법을 통해 최면에 걸릴 수 있을까요? 그 원리는 바로 암시에 있습니다.

암시는 언어 및 기타 자극을 의식을 통하지 않고 무의식에 바로 투사하는 것 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최면 방법도 최면체험자를 이완시키고 언어나 도구를 이용해 마치 잠을 자는것과 같은 무의식 상태로 유도해 내어 암시를 거는 과정입니다. 

암시는 의식을 거치지 않고 바로 무의식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암시에 걸린 사람은 그것에 대해 아무런 비판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 들이게 되며 또한 그것이 자기 스스로 생각해 낸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위 광고 사진은 이런 암시의 특성을 아주 잘 이용한 것 중 하나 입니다. 이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언뜻 보면 해변가에서 젊은 사람들이 마냥 즐겁게 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사진을 잘 보면 남여의 배치가 특정행위 (부끄럽네요. //ㅁ//) 를 할때의 자세와 닮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숨은 메세지는 사진을 언뜻 봐서는 의식이 바로 인지할 수 없지만 무의식에는 그 정보를 남겨 놓기 때문에 그냥 스쳐 지나가더라도 굉장히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의식이 인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숨겨진 메세지에 대한 비판 또한 할 수 없게 됩니다. (그에 따른 메세지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것 때문에 우리나라 광고법규에서도 너무 강한 암시는 광고에 이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최면의 원리에는 심리학의 무의식이란 개념이 절대적인 요소로 작용 합니다.

그러면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무의식에 대해 더 알아보겠습니다.



무의식은 의식이 제대로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나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한사람을 이루는 하나의 인격 입니다. 무의식의 정의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번에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정신분석학은 유명한 심리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사가 창시한 이론으로 정신이 건축물 처럼 하나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이론 입니다.

프로이트가 말한 정신구조의 형태는 의식/자아/무의식 으로 되어있으며 이는 다시 욕망/자아/초자아로 대변됩니다. 욕망/자아/초자아에 관한 것은 다음에 다른 포스트 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의식/자아/무의식의 구조에 대해서만 아주 간략하게 말하겠습니다.

의식은 지금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나 입니다. 이해하기 힘든 말일 수도 있지만 의식은 그냥 잠에서 깨어있는 동안 생각하고 행동하는 가장 익숙한 자기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무의식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의식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입니다. 사람의 기억은 대체로 4~6세 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지만 그 과거를 대부분 알고 있음에도 그 기억들을 항상 떠올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보통 과거에 대해 잊고 있다가 필요할때만 떠올리지요. 그러면 그 기억들은 내가 떠올리기 전에 어디에 있는걸까요? 정신분석학 에서는 그 기억들이 무의식에 있다고 말합니다.

자아는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에서 둘을 연결하는 역활을 합니다. 의식을 통해 인지된 기억은 자아를 통해 무의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나올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를 들면 너무 강한 충격을 주는 사건을 겪은 사람이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자아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그 기억이 의식으로 나오는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 입니다. 하지만 무의식은 그 모든 기억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최면과 암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의식과 자아를 통하지 않고 바로 무의식에게 말하는 것 으로 그래서 의식이 인지하지 못하여도 자아가 그에 대해 판단하지 않더라도 곧바로 작용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최면은 무의식을 들여다 보는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기억들도 무의식에는 모두 저장되어 있으므로 최면을 통해 불러 올 수 있는 것이고 무의식을 통해 의식을 지배하기도 하는 것 입니다.

어떻게 보면 무의식은 우리 인격에서 의식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식과 무의식을 빙산의 모습에 빚대어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위의 사진에서 의식이 표면에 들어난 작은 빙산의 일각 이라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무의식 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혹은 의식이 그냥 커피라면 무의식은 T.O.P야..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면은 치료, 학습, 건강, 인간관계등 무궁무진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최면은 사람이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의식적 으로는 어쩔 수 없는 공포증이나 혐오증을 없에주기도 하며 특정 기억을 잃어버렸을때 그 기억을 무의식 속에서 찾아 준다거나 학습능률을 높이고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역활 등을 합니다.

그리고 최면이 유도자가 체험자를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는 점 때문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분도 있을 텐데요. 내가 정말 그 행동이 싫다면 무의식에 아무리 암시를 넣어도 그 행동은 하지 않게 되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앞에서 무의식에 대해 간략하게 말했는데요. 이 무의식에 대한 정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가 있습니다. 그래서 최면의 정의도 여러가지가 됩니다. 여태까지 말한 최면에 대한 원리와 이해도 하나의 의견일 뿐 최면을 단 한가지 이론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건 최면은 실재한다는 것 입니다.

제가 여기서 드는 의문은 왜 인간에게 최면에 걸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최면에 걸릴 수 있는 잠재능력이 있습니다. 누군가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서 오늘날의 최면이 만들어 진 것이겠지요.

왜 인간에게 이런 기능이 숨겨져 있었던 걸까요? 풀리지 않는 의문과 함께 글을 마칩니다.


1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는 불확실한 길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위험한 실험이나 수상한 모험으로까지 여겨진다.

 

"외람되게도 저 문을 열어 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 문을...."

by 카를 구스타프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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